萬章問曰 (만장문왈)
[宋, 小國也. 今將行王政, (송,소국야,금장행왕정)
齊楚惡而伐之, 則如之何? ] (진초오이벌지,즉여지하)
만장이 물었다.
"송나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이제 王政을 행하려 하는데,
제나라와 초나라가 그것을 미워해서 宋나라를 치면 어떻게 합니까?"
孟子曰 (맹자왈)
[湯居亳, 與葛爲隣, 葛伯放而不祀. (탕거박,여갈위인,갈백방이불사)
湯使人問之曰 ‘何爲不祀?’ (탕사인문지왈 하위불사)
曰 ‘無以供犧牲也’ (왈 무이공희생야)
湯使遺之牛羊. 葛伯食之, 又不以祀. (탕사유지우양,갈백식지,우불이사)
湯又使人問之曰 ‘何爲不祀?’ (탕우사인문지왈,하위불사)
曰 ‘無以供粢盛也.’ (왈 무이공자성야)
湯使亳衆往爲之耕, (탕사박중왕위지경)
老弱饋食. (노약궤신)
葛伯率其民, (갈백률기민)
要其有酒食黍稻者奪之, 不授者殺之. (요기유주식서도자탈지,불수자살지)
有童子以黍肉餉, 殺而奪之. (유동자이서육향,살이탈지)
書曰 (서왈)
'葛伯仇餉.' 此之謂也. (갈백구향,차지위야)
孟子께서 말씀하셨다.
"탕임금이 박땅에 있을 때, 갈나라와 이웃이었다. 갈백이 방종하여 제사 지내지 않았다.
탕임금이 사람을 시켜 '어찌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느냐?' 물으니
'바칠 희생이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탕임금이 소와 양을 보내게 하시니, 갈백이 그것을 먹고 또 제사 지내지 않았다.
탕임금이 또 사람을 보내 '어찌 제사지내지 않는가?' 물었더니,
'제물로 괼 곡식(粢盛)이 없어서 못 지냅니다' 라고 하였다.
탕임금이 박땅의 무리로 하여금 가서 그를 위하여 농사지어 주게 하고,
노약자들이 그들의 양식을 날라다 주도록 했다.
그런데 갈백이 자기 백성들을 거느리고
술과 밥과 곡식 가진 사람들을 강요하여 그것을 빼앗되, 주지 않는 사람은 죽였다.
한 소년이 기장 밥과 고기를 날랐었는데, 그 소년을 죽이고 그것을 빼앗았다.
『서경』에 이르기를
'갈백이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사람과 원수가 되었다'하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爲其殺是童子而征之, (위기살시동자이정지)
四海之內皆曰 (사해지내개왈)
‘非富天下也, (비부천하야)
爲匹夫匹婦復讐也.' (위필부필부복수야)
그가 이 소년을 죽였기 때문에 탕임금이 그를 정벌하였는데,
四海 안이 모두 말하기를
'天下를 부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필부와 필부(백성)를 위하여 원수를 갚음이라'하였다.
湯始征, 自葛載‘ , (탕시정,자갈재)
十一征而無敵於天下. (십일정이무적어천하)
東面而征, 西夷怨. (동면이정,서이원)
南面而征, 北狄怨, 曰 (남면정이,북적원,왈)
‘奚爲後我?’ (해위후아?)
民之望之, 若大旱之望雨也. (민지망지,야대한지망우야)
歸市者弗止, 芸者不變, (귀시자불지,운자불변)
誅其君, 弔其民, (주기군,조기민)
如時雨降. 民大悅. (여시우강,민대열)
書曰 (서왈)
'徯我后, 后來其無罰.' (혜아후,후래기무죄)
탕임금이 처음으로 정벌을 갈로부터 비롯하시어
열한번 치시니 天下에 대적할 자가 없었다.
東으로 향하여 치면 西쪽 오랑캐가 원망하며,
南으로 향하여 치면 北쪽 오랑캐가 원망하여 말하기를
'어찌 우리는 나중으로 하시는가'하며,
백성이 바라기를 큰 가뭄에 비를 바라는 것과 같이 하였다.
장사하러 가는 사람은 그대로 그치지 않았고, 밭 매는 사람은 그대로 밭갈이를 하였다.
그 나라의 임금을 베어서 그 나라의 백성을 위로하는 것이
때에 맞춰 비가 내리는 것과 같은지라 백성이 크게 기뻐하였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우리 임금을 기다리노니, 임금이 오시면 형벌이 없어지리라>하였다.
有攸不惟臣, 東征, 綏厥士女, (유유불유신,동정,수궐사유)
匪厥玄黃, (비궐현황)
紹我周王見休, 惟臣附于大邑周.‘(소아주왕견휴,유신부우대읍주)
其君子實玄黃于匪以迎其君子, (기군자싱현황비이앙기군자)
其小人簞食壺漿以迎其小人, (기소인단사호장이앙기소인)
救民於水火之中, 取其殘而已矣. (구민어수화지중,취기잔이이의)
아직도 신하가 되지 않는 곳이 있어, 東으로 치시어 그곳의 남녀를 편안히 하였다.
그러자 그 곳의 남녀들이 검고 누른 비단을 광주리에 넣고 와서
주나라 임금을 섬겨, 훌륭하신 덕을 보고 위대한 읍인 주에 신하로 복종하였다.
그곳의 君子들은 검은(玄), 누런(黃) 비단을 상자에 넣어서 주나라의 君子를 맞이하고,
그곳의 백성들은 대그릇에 담은 밥과 병에 담은 마실 것으로 주나라의 백성을 맞이하였다.
백성을 물과 불 가운데에서 구해 내고, 잔악한 것을 없애 주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太誓曰 (태서왈)
‘我武惟揚, 侵于之疆, 則取于殘, (아무유양,침우지강,즉취우잔)
殺伐用張, 于湯有光.' (살벌용장,우탕유광)
<태서>에
'우리 무위를 드날려서 그 국토를 쳐들어가 포악한 임금을 없애
살벌의 공을 베풀었으니, 탕임금보다도 더욱 빛나리'라고 하였다.
不行王政云爾, 苟行王政, (불행왕정운이,구행왕정)
四海之內皆擧首而望之, 欲以爲君. (사해지내개거수이망지,욕이위군)
齊楚雖大, 何畏焉?](제초수대,하외언?)
王道政治를 행하지 않아서 그렇지, 정말로 王政을 행하기만 하면
四海의 안이 모두 고개를 높이 들고 바라보며 임금 삼고자 하리니,
제나라와 초나라가 비록 크다한들 무엇이 두려우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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