微子(미자)는 去之(거지)하고 箕子(기자)는 爲之奴(위지노)하고 比干(비간)은 諫而死(간이사)하니라
孔子曰 (공자왈)
殷有三仁焉(은유삼인언)하니라
미자는 떠나가고 기자는 노예가 되고 비간은 간언을 하다가 죽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은 나라에 인한 자가 셋이 있었노라”
柳下惠 爲士師(류하혜위사사)하야 三黜(삼출)이어늘
人(인)이 曰(왈) 子未可以去乎(자미가이거호)아
曰(왈) 直道而事人(직도이사인)이면 焉往而不三黜(언왕이불삼출)이며
枉道而事人(왕도이사인)이면 何必去父母之邦(하필거부모지방)이리오
노 나라의 현인 유하혜가 사사(법무 장관)에 임명되었다가 3번 파면되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이 말하기를 “ 당신은 왜 아직 떠나지 않는가?”
유하혜가 말하기를 “ 곧은 도(道)로서 사람을 섬기면, 어디에 가서나 3번은 내침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도(道)를 굽히어 사람을 섬기기 위해 굳이 부모의 나라를 떠날 필요가 있겠습니까?”
齊景公(제경공)이 待孔子曰(시공자왈)
若季氏則吾不能(약계씨즉오불능)이어니와
以季孟之間(이계맹지간)으로 待之(시지)호리라 하고
曰(왈) 吾老矣(오노의)라 不能用也(불능용야)이라 한대 孔子(공자)가 行(행)하시다
제 나라 경공이 공자를 대우 하려고 하면서 말하였다.
“ 노 나라의 대부 계씨에게 만큼은 할 수 없지만 계씨외 맹씨의 중간만큼은 대우 하리라”
다시 말하기를 “ 내가 늙었노라. 등용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니 공자가 떠나시었다.
齊人(제인)이 歸女樂(귀여악)이어늘 季桓子受之(계환자수지)하고
三日不朝(삼일불조)한대 孔子行(공자 행)하시다
제 나라에서 미녀와 악사들을 노 나라로 보냈다. 계환자가 받아 들이고
삼일 동안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이에 공자가 노 나라를 떠났다.
楚狂接輿(초광접여)가 歌而過孔子曰(가이과공자 왈)
鳳兮鳳兮(봉혜봉혜)여
何德之衰(하덕지쇠)오
往者(왕자)는 不可諫(불가간)이어니와
來者(래자)는 猶可追(유가추)이니
已而 已而(이이 이이)어다
今之從政者(금지종정자)는 殆而(태이)니라
孔子(공자)가 下(하)하사 欲與之言(욕여지언)이러시니
趨而辟之(추이피지)하니 不得與之言(불득여지언)하시다
초 나라의 광인 접여가 수레를 탄 공자 앞을 지나가며 노래로 말하기를
“ 봉황이여!, 봉황이여!.
쇠한 덕을 어찌할까?.
지난 일은 어찌할 수 없지만
오는 일은 하기 나름이지.
그만 두라, 그만 두라.
요즘 정치 위태롭다. “
공자께서 수레에서 내리시어 더불어 이야기하기를 원하였으나,
빠르게 걸어 피해 버렸다. 공자는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지 못하였다.
長沮桀溺(장조걸닉)이 耦而耕(우이경)이어늘 孔子過之(공자과지)하실새
使子路(사자로)로 問津焉(문진언)하신대
長沮曰(장조왈) 夫執輿者爲誰(부집여자위수)오
子路曰((자로왈) 爲孔丘(위공구)시니라
曰(왈) 是魯孔丘與(시노공구여)아
曰(왈) 是也(시야)시니라
曰(왈) 是知津矣(시지진의)니라
問於桀溺(문어걸닉)한대 桀溺(걸닉)이 曰(왈) 子爲誰(자위수)오
曰(왈) 爲仲由(위중유)이로라
曰(왈) 是魯孔丘之徒與(시노공구지도여)아
對曰(대왈) 然(연)하다
曰(왈) 滔滔者天下皆是也(도도자천하개시야)이니 而誰以易之(이수이역지)리오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차이여기종피인지사야)론 豈若從辟世之士哉(기약종피세지사재)리오 하고
耰而不轍(우이불철)하더라
子路行(자로행)하야 以告(이고)한대 夫子憮然曰(부자무연왈)
鳥獸(조수)는 不可與同群(불가여동군)이니 吾非斯人之徒(오비사인지도)를 與(여)오
而誰與(이수여)이리오
天下有道(천하유도)이면 丘不與易也(구불여역야)이니라
장저와 우익이 나란히 밭을 가는데 공자께서 지나 가사다가
자로로 하여금 나루터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게 하셨다.
정저가 말하였다 “ 저기 수레 고삐를 잡은 자가 누구이십니까?”
자로가 말하였다. “ 공구라는 분이십니다.”
정저가 말하였다 “ 저분이 바로 노 나라의 공구이십니까?”
자로가 말하였다. “ 그렇습니다.”
정저가 말하였다 “ 그렇다면 나루터쯤은 아시지 않겠습니까?”
다시 걸닉에게 물었다. 걸닉이 말하기를 “ 당신은 누구시요?”
자로가 말하였다. “ 나는 중유라고 합니다.”
걸닉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노 나라 공구의 무리인가?” 자로가 대답하기를 “ 그렇습니다.”
걸닉이 말하였다.” 도도한 흙탕물이 천하를 덮고 있는데, 누가 이것을 바꾸리오.
사람을 피해 다니는 선비를 따르니 세상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낫지 않겠소.”
하고는 씨알 덮는 일만 계속하였다.
자로가 돌아가 그 말을 고하니 공자께서 멍한 상태로 있다가 말씀하셨다.
“ 새와 짐승과는 무리 지어 살 수 없으니, 내가 인간과 무리 지어 살지 않는다면
누구와 함께할 거냐?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나는 구태여 바꾸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子路從而後(자로종이후)이러니 遇丈人(우장인)이 以杖荷蓧(이장하조)하야
子路問曰(자로문왈) 子見夫子乎(자견부자호)아
丈人曰(장인왈) 四體不勤(사체불근)하며
五穀不分(오고분배)하나니 孰爲夫子(숙위부자)오 하고는 植其杖而芸(식기장이운)하더라
子路拱而立(자로공이립)한대 止子路宿(지자로속)하야
殺鷄爲黍而食之(살계위서이식지)하고 見其二子焉(견기이자언)이어늘
明日(명일)에 子路行(자로행)하야 以告(이고)한대
子曰(자왈)
隱者也(은둔자)로다 하시고 使子路(사자로)로 反見之(반견지)하시니 至則行矣(지즉행의)러라
子路曰(자로왈)
不仕無義(불사무의)하니 長幼之節(장유지절)을 不可廢也(불가폐야)이니
君臣之義(군신지의)를 如之何其廢之(여지하기폐지)리오
欲潔其身而亂大倫(욕결기신이란대륜)이로다
君子之仕也(군자지사야)는 行其義也(행기의야)이니
道之不行(도지불행)은 已知之矣(이지지의)시니라
자로가 공자일행을 따르다가 처지게 되었는데 지팡이에 삼태기를 걸친 노인을 만났다.
자로가 물었다. ” 그대는 우리 선생님을 보셨습니까?”
노인이 말하였다. “ 네개의 팔,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지도 않고,
오곡을 분별도 못하는 사람을 누가 선생이라고 하는가?” 하고는 지팡이를 꽂아 놓고 계속 김을 매기 시작했다.
자로가 두 손을 마주잡고 서 있으니. 그 노인은 집으로 데려가 머물게 하였다.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대접하고 자기의 두 아들을 인사시켰다.
다음날 자로가 나아가 공자에게 이를 고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은둔자이시다.” 하시고 자로를 시켜 다시 찾아 뵙게 하였으나 이미 떠나셨다.
자로가 두 아들에게 말하였다.
“ 벼슬을 하지 않으면 정의가 사라집니다. 장유의 예절을 폐할 수 없듯이
군신지의를 어떻게 폐할 수 있으리오.
자기자신을 고결하게 지키려 하다가 사회의 커다란 윤리를 어지럽힐 수도 있는 것이다.
군자가 벼슬을 하는 것은 의를 행하기 위함이며, 도가 행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우리도 알고 있는 것이다.
逸民(일민)은 伯夷(백이)와 叔齊(숙제)와 虞仲(우중)과 夷逸(이일)과 朱張(주장)과 柳下惠(유하혜)와
少連(소련)이니라
子曰(지왈)
不降其志(불강기지)하며 不辱其身(불욕기신)은 伯夷叔齊與(백이숙제)인저
謂柳下惠少連(위유하혜소련)하사대
降志辱身矣(융지요신의)나
言中倫(언중윤)하며 行中慮(행중려)하니 其斯而已矣(기사이이야)니라
謂虞仲夷逸(위우중이일)하사대
隱居放言(은거방언)하나 身中淸(신중청)하며 廢中權(폐중권)이니라
我則異於是(아즉이어시)하야 無可無不可(무가무불가)호라
일민으로는 백이와 숙제,우중과 이일, 주장과 유하혜,
소련을 들 수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그 뜨을 낮추지 아니하며,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은 자는 백이,숙제이다.”
유하혜와 소련에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 자기의 뜻을 낮추기도 하고 몸을 욕되게도 하였으나,
그 말이 윤리에 맞고 행동이 사리에 일치하니 이것만으로도 훌륭하다.”
또 우중과 이일에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 은거하여 살며 말은 삼가 하였으며 몸은 깨끗함에 합치하고 폐함은 권도에 맞았다.
나는 이들과 다르다. 나는 가(可)한 것도 없고 불가(不可)한 것도 없다.
(고정적으로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되지 않는다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 逸民 : 학문(學問)과 덕행(德行)이 있으면서도 세상(世上)에 나서지 아니 하고 민간(民間)에 파묻혀 지내는 사람
大師摯(대사지)는 適齊(적제)하고 亞飯干(아반간)은 適楚(적초)하고 三飯繚(삼반료)는 適蔡(적채)하고
四飯缺(사반결)은 適秦(적진)하고 鼓方叔(고방숙)은 入於河(입어하)하고
播鼗武(파도무)는 入於漢(입어한)하고 少師陽(소사양)과 擊磬襄(격경양)은 入於海(입어해)하니라
태사 진은 제 나라로 가고, 아반 간은 초 나라로 가고, 삼반 료는 채 나라로 가고,
사반 결은 진 나라오 가고, 고 방숙은 하로 들어 가고,
파도 무는 한으로 들어 가고, 소사 양과 격경 양은 바다로 들어갔다.
** 태사, 아반 .. 등은 음악을 담당하는 직함 임
周公(주공)이 謂魯公曰(위노공왈)
君子不施其親(군자불시기친)하얀 不使大臣(불사대신)으로 怨乎不以(원호불이)하며
故舊無大故(고구무대고) 則不棄也(즉불기야)하며 無求備於一人(무구비어일인)이니라
주공이 노공(자기의 아들 백금)에게 타일러 말씀하시었다.
“ 군자는 그 친족을 버리지 않는다. 대신들이 원망하지 않도록 할 것이며
그리고 오래된 친구는 큰 사고가 없는 한 그들을 버리지 말 것이며, 한 사람에게 완벽하기를 바라지 말라.”
周有八士(주유팔사)하니 伯達(백달)과 伯适(백일)과 仲突(중돌)과 仲忽(중홀)과
叔夜(숙야)와 叔夏(숙하)와 季隨(계수)와 季騧(계와)이니라
주 나라에 여덟 선비가 있었으니 백달과 백일, 중동과 중홀,
숙야와 숙하, 계수와 계와 이니라.
** 한 어머니가 네번 쌍둥이를 낳아 여덟 아들을 낳았는데 모두가 훌륭한 선비가 되었으므로 특기할 만한 사건으로 기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