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시,서예

매화는 향기를 팔지않는다

백운산촌노 2013. 6. 10. 17:06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 항장곡)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 불매향)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 여본질)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 우신지)

 

오동나무는 천년의 세월을 늙어가며 항상 거문고의 소리를 간직하고,

매화는 한평생을 춥게 살아가더라도 결코

그 향기를 팔아 안락함을 구하지 않는다.“

달은 천번을 이즈러져도 본질이 남아 있고  

버드나무는 백 가지로 나누어져도

다시 새 가지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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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4대 문장가의 한사람이라는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의 글인데

야언(野言)이라는 책에서 나온 내용이다.

 

 

신흠:

본관 평산(平山). 자 경숙(敬叔). 호 현헌(玄軒)·상촌(象村)·현옹(玄翁)·방옹(放翁). 시호 문정(文貞). 아버지는 개성도사 승서(承緖)이며, 어머니는 좌참찬 송기수(宋麒壽)의 딸이다. 어릴 때 소인수와 이제민(李濟民)에게 학문을 배웠다. 1585년 진사 ·생원시에 합격, 이듬해에는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재도찰방(良才道察訪)으로 삼도순변사(三道巡邊使) 신립(申砬)을 따라 조령전투에 참가하였다. 1593년 이조좌랑, 이듬해 이조정랑·사복시첨정으로 승진하였다. 1599년 선조의 총애를 받아 장남 익성(翊聖)이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의 부마로 간택됨과 함께 동부승지에 올랐다. 그 후 형조참의·이조참의·예조참의·병조참의·대사간을 역임했다.1601년 《춘추제씨전(春秋諸氏傳)》을 합찬한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예문관제학이 되었다. 이어 예조참판·병조참판·홍문관부제학·성균관대사성·도승지·예문관제학·병조참판·도승지를 차례로 지냈다. 1604년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오르면서 한성판윤이 되었다. 1613년 계축화옥이 일어나자 선조로부터 영창대군(永昌大君)의 보필을 부탁받은 유교칠신(遺敎七臣)의 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1616년 춘천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 즉위와 함께 예문관·홍문관대제학에 중용되었고, 같은해 우의정이 되었다.1627년 정묘호란 때 좌의정으로 세자를 수행하고 전주에 피란하였으며, 9월 영의정에 올랐다가 죽었다. 그는 일찍이 학문에 전념하여 문명을 떨쳤고, 동인의 배척을 받았으나 선조의 신망을 받았다. 뛰어난 문장력으로 대명외교문서의 제작, 시문의 정리, 각종 의례문서 제작에 참여하였다. 정주(程朱)학자로 이름이 높아, 이정구(李廷龜)·장유(張維)·이식(李植)과 함께 한문학의 태두로 일컬어진다. 1651년(효종2년)에 인조 묘정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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