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여(八餘) : 여덜가지의 넉넉함)
芋羹麥飯飽有餘
蒲團煖堗臥有餘
涌地淸泉飮有餘
滿架書卷看有餘
春花秋月賞有餘
禽語松聲聽有餘
雪梅霜菊嗅有餘
取此七餘樂有餘也
“토란국과 보리밥을 배불리 먹고,
들자리와 따뜻한 온돌에서 잠을 넉넉하게 자고,
땅에서 솟는 맑은 샘물을 넉넉히 마시고,
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하게 보고,
봄날에는 꽃을 가을에는 달빛을 넉넉하게 감상하고,
새들의 지저귐과 솔바람 소리를 넉 듣고,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에서는 넉넉하게 향기를 맡는다.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를 넉넉하게 즐기니 팔여가 아닌가 ??
중종 시대 김정국이라는 선비는 기묘사화 때 축출당해 지금의 일산 근처에 정자를 하나 짓고
애들을 가르치고 글이나 지으며 나날을 보낸 사람이다.
이 사람은 가난과 불운한 정치 역정 속에 일생을 보내면서도
정자 이름을 은휴(恩休) 지을 정도로 불행조차 다행으로 여기고, 임금을 원망하기 보다는 고마워했다.
은휴는 임금님 덕에 쉬고 있다는 뜻이다. 벼슬 살다가 밀려나 생활이 완전히 달라지자 호까지
여덟 가지 넉넉한 게 있다는 뜻의 八餘居士(팔여거사)정하고 안빈의 생활을 했다.
하루는 이런 생활을 본 친구 하나가 옛날에 비하면 부족한 게 많을 터인데
오히려 여유가 많다는 게 이해할 수 없어 그 호의 의미를 물어봤다.
그 때 대답한 내용이 위의 팔여라는 것이다. 팔여는 하나같이 남과 다퉈서 얻을 수 있는
물건이나 생활이 아니다. 누가 뺏으려고도 않고 아무리 즐겨도 막는 이가 없어
그야말로 하늘이 준 것이다. 이런 답을 듣고 난 친구도 간단치 않은 사람이었다.
“세상에는 자네와 반대로 사는 사람이 있더군.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고도 부족하고,
휘황한 난간에 비단 병풍을 치고 잠을 자면서도 부족하고, 이름 난 술을 실컷 마시고도 부족하다네.
울긋불긋한 그림을 실컷 보고도 부족하고, 아리따운 기생과 실컷 놀고도 부족하고,
좋은 음악을 다 듣고도 부족하고, 희귀한 향을 맡고도 부족하다 여기지.
한 가지 더 이 일곱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그 부족함을 걱정하더군.”
알다시피 친구가 말한 이런 즐기는 것은 하나 같이 쟁취해서 얻어야 할 쾌락이다.
더 가련한 것은 풍족해진 다음에도 도무지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김정국에게는 또 하나 부자 친구가 있었는데 조금 노탐이 있었다.
김정국은 편지를 보냈다. “그대는 살림살이가 나보다 백배나 넉넉한데 어째서 그칠 줄 모르고
쓸데없는 물건을 모으는가.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있기야 있지. 책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벗 한 사람,
신 한 켤레, 잠을 청할 베게 하나, 바람 통하는 창문 하나, 햇볕 쪼일 툇마루 하나, 차 달일 화로 한 개,
늙은 몸 부촉할 지팡이 한 개, 봄 경치 즐길 나귀 한 마리가 그것이라네.
이 열 가지 물건이 많기는 하지만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네.
늙은 날을 보내는 데 이외에 필요한 게 뭐가 있겠나.”
김정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