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제19. 자장편
백운산촌노
2010. 2. 16. 11:34
子張曰(자장왈)
士見危致命(사견위치명)하며 見得思義(견득사의)하며
祭思敬(제사경)하며 喪思哀(상사애)면 其可已矣(기가이의)니라
자장이 말하였다.
“선비는 나라가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이득을 보면 정의를 생각하고,
제사에서는 공경함을 생각하며, 상사를 당하면 슬픔을 생각한다.그리하면 가히 선비라고 할 수 있다.”
子張曰(장장왈)
執德不弘(집덕불홍)하며 信道不篤(신도불언)이면
焉能有爲(언능유위)이며 焉能有亡(언능유망)이리오
자장이 말하였다.
“덕을 잡는데 넓지 못하며, 도를 믿는데 독실하지 못하면
그런 사람은 덕이 있다, 없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다.”
子夏之門人(자하지문인)이 問交於子張(문교어자장)한대
子張 曰(자장 왈) 子夏云何(자하운하)오
對曰(대왈) 子夏曰(자하왈)
可者(가자)를 與之(여지)하고 其不可者(기불가자)를 拒之(거지)라 하더이다
子張曰(자장왈)
異乎吾所聞(이호오소문)이로다 君子(군자)는 尊賢而容衆(존현이용중)하며
嘉善而矜不能(가선이긍불능)이니 我之大賢與(아지대현여)인댄
於人(어인)에 何所不容(하소불용)이며 我之不賢與(아지불현여)인댄
人將拒我(인장거아)이니 如之何其拒人也(여지하기거인야)이리오
자하의 문인이 자장에게 벗을 사귀는데 대하여 물었다.
자장이 말하기를 “ 자하는 무어라고 말 하던가?.”
자하의 문이 대답하였다. “ 자하께서 말씀하시길
‘ 벗할만하면 벗하고 그러하지 못하면 버려라” 하셨습니다.”
자장이 말하였다.
” 내가 들은 것과는 다르구나. 군자는 현인을 존중하되 대중을 포용해야 하며
착한 사람을 아름답게 여기고 능력이 없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자신이 크게 어질다면
타인에 대하여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자신이 어질지 못하다면
다른 사람들이 먼저 나를 거절할 것이니 내가 다른 사람을 거절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느냐?”
子夏曰(자하왈)
雖小道(수소도)이나 必有可觀者焉(필유가관자언)이어니와
致遠恐泥(치원공니)라 是以(시이)로 君子不爲也(군자불위야)이니라
자하가 말하였다.
“비록 작은 도(道)라 하드라도 반드시 볼 만한 점은 있다.
그러나 원대한 이상을 실현하는데 이러한 흙탕물이 장애가 될까 두렵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러한 것(小道)을 행하지 않느니라.”
子夏曰(자하왈)
日知其所亡(일지기소망)하며 月無亡其所能(월무망기소능)이면 可謂好學也已矣(가위호학야이의)니라
자하가 말하였다.
날마다 모르는 것을 알아내고, 달마다 자기가 이미 익힌 것(능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면
가히 학문을 좋아 한다고 할 수 있다.”
子夏曰(자하왈)
博學而篤志(박학이독지)하며 切問而近思(절문이근사)하면 仁在其中矣(인재기중의)니라
자하가 말하였다.
“폭 넓게 배우고 그 듯을 돈독히 하라.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은 그 가운데 있다.”
子夏曰(자하왈)
百工(백공)이 居肆(거사)하야 以成其事(이성기사)하고
君子(군자) 學(학)하야 以致其道(이치기도)이니라
자하가 말하였다.
“ 工人들은 공방에 거주하면서 공예품을 만들어 내고
군자는 배움으로서 그 도를 이루어 내야 한다.”
子夏曰(자하왈)
小人之過也(소인지과야)는 必文(필문)이니라
자하가 말하였다.
소인들은 잘 못이 있으면 반드시 변명하려 한다.”
子夏曰(자하왈)
君子有三變(군자유삼변)하니 望之儼然(망지엄연)하고 려
卽之也溫(즉지지온)하고 聽其言也厲(청기언야려)이니라
자하가 말하였다.
“군자에게는 3가지의 변하는 모습이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엄숙하고 단정하며
가까이서 보면 온화하고, 그 말을 들어보면 명쾌하다.”
子夏 曰(자하왈)
君子信而後(군자이신이후)에 勞其民(로기민)이니
未信則以爲厲己也(미신즉이위려기야)이니라
信而後(신이후)에 諫(간)이니
未信則以爲謗己也(미신즉이위방기야)이니라
자하가 말하였다.
군자는 먼저 신임을 얻은 후에 백성들에게 일을 시킨다.
신임을 얻기전에 그렇게 하면 백성들은 자기를 괴롭힌다고 생각한다.
윗 사람에게도 신임을 얻은 후에 간(諫)해야 한다.
신임을 얻기 전에 간하면 자기를 비방한다고 생각하느니라.”
子夏 曰(자하왈)
大德(대덕)이 不踰閑(불유한)이면 小德(소덕)은 出入(출입)이라도 可也(가야)이니라
자하가 말하였다.
“ 인간의 근본이 되는 큰 도덕의 문지방을 넘어가지 않으면 사소한 도덕은 들쭉날쭉해도 상관이 없다.”
子游 曰(자유왈)
子夏之門人小子(자하지문인소하)가 當灑掃應對進退則可矣(당쇄소응대진퇴즉가의)나
抑末也(억말야)이라 本之則無(본지즉무)하니 如之何(여지하)오
子夏聞之曰(자하문지왈) 噫(희)라 言游 過矣(언유과의)로다
君子之道 孰先傳焉(군자지도숙선전언)이며 孰後倦焉(숙후권언)이리오
譬諸草木(비제초목)컨댄 區以別矣(구이별의)니
君子之道 焉可誣也(군자지도언가무야)이리오
有始有卒者(유시유졸자)는 其惟聖人乎(기유성인호)인저
자유가 말하였다.
자하의 문인인 소자들은 집안을 청소하고 손님을 접대하고, 집안출입 등에 대해서는 잘 배웠으나
그런것은 말엽적안 것이고, 기본은 없으니 어찌된 것인가?”
자하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 어허!, 언유(자유의 성과 자)가 지나치다.
군자의 도에 있어서 어느 것이 먼저라 하여 가르치고, 어는 것이 후라 하여 가르치지 않는단 말인가?
풀과 나무에 비유해도 구역별로 나누어 심고 거두듯이
군자의 도에 있어 어찌 깔 봄이 있을 수 있겠는가?
시작과 끝이 있고, 이 모든 것을 구비한 분이 성인일 것이다.”
子夏曰(자하왈)
仕而優則學(사이우즉학)하고 學而優則仕(학이우즉사)이니라
자하가 말하였다.
벼슬을 하고도 여유가 있으면 학문을 하라. 학문을 하고도 여유가 있으면 벼슬을 하라.”
子游曰(자유왈)
喪(상)은 致乎哀而止(치호애이지)니라
자유가 말하였다.
상을 당해서는 슬픔을 극진히 하는 데서 그쳐야 한다.”
子游 曰(자유왈)
吾友張也(오우장야)는 爲難能也(위난능야)이나 然而未仁(연이미인)이니라
자유가 말하였다.
“ 나의 벗 자장은 어려운 일은 잘 극복하지만 인(仁)에는 미치지 못한 것 같다.”
曾子曰(증자왈)
堂堂乎(당당호)이라 張也(장야)여 難與幷爲仁矣(난여병위인의)로다
증자가 말하였다.
“ 나의 친구 자장은 위풍 당당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러나 그와 더불어 인(仁)을 실현하기는 어렵다.”
曾子 曰(증자왈)
吾 聞諸夫子(오문제부자)호니 人未有自致者也(인미유자치자야)이나
必也親喪乎(필야친상호)인저
증자가 말하였다.
“ 내가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 사람이 스스로 어떤 일에 성심을 다하기란 어려우나
반드시 부모의 상에는 성심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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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子曰(증자왈)
吾聞諸夫子(오문제부자)호니 孟莊子之孝也(맹장자지효야)이 其他(기타)는 可能也(가능야)이어니와
其不改父之臣(기불개부지신)과 與父之政(여부지정)이 是難能也(시난능야)이니라
증자가 말하였다.
“ 내가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 맹장자의 효성에 있어 다른 부문은 실현이 가능하지만
아버지의 신하와 아버지의 정치방식을 바꾸지 아니하고 잘 계승한 것은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
孟氏(맹씨) 使 陽膚(사 양부)로 爲士師(위사사)이라 問於曾子(문어증자)한대
曾子 曰(증자왈)
上失其道(상실기도)하야 民散(민산)이 久矣(구의)니
如得其情則哀矜而勿喜(여득기정즉애긍이물희)니라
맹손씨가 증자의 제자인 양부를 법관으로 임명하였다. 양부가 찾아와 법관의 도리를 증자에게 물었다.
증자가 말하였다.
“ 법무를 담당하는 상급 관리들이 도를 잃어버려 민심이 흩어 진지 오래 되었다.
범죄의 정황을 알아냈으면 그 것을 기뻐하지 말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子貢 曰(자공왈)
紂之不善(주지불선)이 不如是之甚也(불여시지심야)이니
是以(시이)로 君子惡居下流(군자오거하류)하나니 天下之惡(천하지악)이 皆歸焉(개귀언)이니라
자공이 말하였다.
” 은 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주의 불선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토록 심하지는 않았다.
그런고로 군자는 자신을 하류에 머물도록 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악은 모두 하류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子貢 曰(자공 왈)
君子之過也(군자지과야)는 如日月之食焉(여일월지식언)이라
過也(과야)에 人皆見之(인개견지)하고 更也(경야)에 人皆仰之(인개앙지)니라
자공이 말하였다.”
군자의 허물은 일식,월식과 같다.
허물이 있을 때는 사람들이 모두 한 눈에 알아 보고, 그것을 고치면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 보게 된다.”
衛公孫朝(위공손조)가 問於子貢曰(문어자공왈)
仲尼(중니)는 焉學(언학)고
子貢 曰(자공 왈)
文武之道(문무지도)는 未墜於地(미추어지)하야 在人(재인)이라
賢者(현자)는 識其大者(식기대자)하고
不賢者(불현자)는 識其小者(식기소자)하야
莫不有文武之道焉(막불유문무지도언)하니
夫子(부자)는 焉不學(언불학)이시며 而亦何常師之有(이역하상사지유)이시리오
위 나라의 공손자가 자공에게 물었다.
그대의 스승 중니(공자)는 어디서 배웠습니까?”
자공이 말하였다.
” 주 나라 문물을 창시한 문왕과 무왕의 도는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아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있다.
현명한 사람은 그 가운데서 큰 것을 기억하고 있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그 가운데 작은 것이라도 기억하고 있다.
문왕과 무완의 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없으니
선생님께서는 어디서든 배우시니 어찌 정해진 스승님이 다로 있지 않으셨다.”
叔孫武叔(숙손무숙)이 語大夫於朝曰(어대부대부어조왈)
子貢(자공)이 賢於仲尼(현어중니)하니라
子服景伯(자복경백)이 以告子貢(이고자공)한대
子貢(자공)이 曰(왈)
譬之宮墻(비지궁장)컨댄 賜之墻也(사지장야)는 及肩(급견)이라
窺見室家之好(규견실가지호)이어니와
夫子之牆(부자지장)은 數仞(수인)이라 不得其門而入(부득기문이입)이면
不見宗廟之美(불견종묘지미)와 百官之富(백관지부)이니
得其門者(득기문자)가 或寡矣(혹과의)라 夫子之云(부자지운)이 不亦宜乎(불역의호)아
노 나라의 숙손무숙이 조정에서 대부들에게 말하였다.
“ 나는 자공이 중니(공자)보다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복경백이 이를 자공에게 고하였다.
자공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 궁의 담장에 비유하면 사(자공의 이름))의 담장 높이는 겨우 어께에 미치니라.
그래서 집안의 좋은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그러나 선생님(중니)의 담장은 여러 길이나 되어 그 문안으로 들어가 보지 않으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들의 일하는 집의 풍요로움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대문으로 들어간 자가 거의 없는지라 숙손무숙 대부의 말씀이 잘못됨이 당연하다.”
叔孫武叔숙손무숙)이 毁仲尼(훼중니)어늘
子貢(자공)이 曰(왈)
無以爲也(무이위야)하라 仲尼(중니)는 不可毁也(불가훼야)이니
他人之賢者(타인지현자)는 丘陵也(구릉야)이라
猶可踰也(유가유야)이어니와 仲尼(중니)는 日月也(일월야)이라
無得而踰焉(무득이유언)이니 人雖欲自絶(인수욕자절)이나
其何傷於日月乎(기하상어일월호)이리오
多見其不知量也(다견기부지량야)이로다
손숙무숙이 공자를 헐 뜯었다.
이에 자공이 말하였다.
“ 쓸데 없는 일이로다. 선생님은 헐뜯을 수 없는 분이다.
다른 현자들은 언덕과 같아서
노력하면 넘을 수 있지만 선생님은 해와 달과 같아서
사람들이 넘을 수 없으며, 가령 사람들이 해와 달과 관계를 끊으려 한다고 해도
그것이 해와 달에게 무슨 손상을 줄 수 있으리오.
다만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낼 뿐이다.”
陳子禽(진 자금)이 謂子貢曰(위자공왈)
子爲恭也(자위공야)이언정 仲尼(중니)가 豈賢於子乎(기현어자호)이리오
子貢(자공)이 曰(왈)
君子一言(군자일언)애 以爲知(이위지)하며 一言(일언)에 以爲不知(이위부지)니 言不可不愼也(언불가불신야)이니라
夫子之不可及也(부자지불가급야)는 猶天之不可階而升也(유천지불가계이승야)이니라
夫子之得邦家者(부자지득방가자)인댄 所謂立之斯立(소위립지사립)하며
道之斯行(도지사행)하며 綏之斯來(수지사례)하며 動之斯和(동지사화)하며
其生也榮(기생야영)하고 其死也哀(기사야애)니
如之何其可及也(여지하기가급야)이리오
자공의 제자 진자금이 자공에게 말하였다.
“ 선생님께서는 너무 겸손하십니다. 중니가 어째서 선생님보다 현명하십니까?
자공이 말하였다.
“군자는 말 한마디에 지혜롭게도 되며, 말 한마디에 어리석게도 되니 그 말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선생님에 미칠 수 없음은 사다리로 하늘을 오를 수 없음과 같다.
만약 선생님이 한 나라를 얻어 다스렸다면 말 그대로 그 나라를 세우면 서고,
이끌면 이끌리고, 편안하게 하면 사방에서 모여들고, 감동시키면 모두 동화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살아계시면 영광으로 생각하고, 돌아가시면 애통해 할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여 선생님의 경지에 미칠 수 있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