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제11.선진편
백운산촌노
2010. 2. 10. 15:55
子曰(자왈)
先進(선진)이 於禮樂(어예악)에 野人也(야인야)오
後進(후진)이 於禮樂(어예악)에 君子也(군자냐)라 하나니
如用之則吾從先進(여용지칙 오종선진)하리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악에 먼저 나아간 자들은 지금 보아도 촌스럽다.
그런데 예악에 뒤 늦게 나아간 자들은 썩 군자다웁다.
그러나 이들간에 누구를 선택하라 한다면 나는 예악에 먼저 나아간 촌스러운 자들을 따르겠다
- 선진: 공자의 고난 길에 참여하여 여러가지의 어려움울 겪으면서 학문을 완성한
자로,안연,염유,재아,자공, 민자건,염백우,중궁,원현,자고,공서화 등
- 후진: 공자학단의 규모가 짜여지고 커리큘럼이 완성된 이후에 들어와서 제대로 수업을 쌓은 인물들로
자유,자장,자하,증삼,유약,번지,칠조개,담대명멸 등
子曰(자왈)
從我於陳,蔡者(종아어진,채자)는 皆不及門也(개불급문야)로다
德行(덕행)엔 顔淵 閔子騫 冉伯牛 仲弓(안연,민자건,염백우,중궁)이오
言語(어어)엔 宰我 子貢(재아,자공)이오
政事(정사)엔 冉有 季路(염유,계로)오 文學(문학)엔 子游 子夏(자유,자하)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나의 고난에 동참했던 사람들은 모두 취직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
덕행에는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었고,
언어에는 재아, 자공이었고,
정사에는 염유, 계로(자로)였고, 문학에는 자유, 자하였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回也(회야)는 非助我者也(비조어자야)로다 , 於吾言(어오언)에 無所不說(무소불열)이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안회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로다. 내 말에 기뻐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라고 하셨다.
* 이말은 공자가 안회를 꾸짖는 말이 아니라 상찬하는 말이다.
한번도 따지지도,묻지도 아니하면서 자기의 뜻을 110% 이해하고도남는제자를보고하는말씀이니….
子曰(자왈)
孝哉(효재)라 閔子騫(민자건)이여
人不間於其父母昆弟之言(인불간어기부모곤제지언)이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효성스럽구나. 민자건이여.
다른 사람들이 민자건의 부모와 형제 집안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는 말에 조금도 트집을 못하는구나.”
라고 하셨다.
南容이 三復白圭(삼복백규)어늘
孔子(공자) 以其兄之子(이기형지자)로 妻之(처지)하시다
남용이 <시경(詩經)>의 백규(白圭)라는 시를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해서 외웠다. 그 시가 그 인품에 젖었다.
공자께서 자기 형님의 딸을 그에게 시집 보내셨다.
* 지금도 시경에 남아 있는 백규라는 시
- 白圭之玷 尙可磨也 : 흰 구슬의 티는 오히려 갈아 없앨 수 있지만
斯言之玷 不可爲也 : 일상적 말의 티는 갈아 없앨 수 없어라
季康子問(계강자문) 弟子 孰爲好學(제자 숙위지학)이니잇고
孔子 對曰(공자 대왈) 有顔回者好學(유안회자호학)하더니 不幸短命死矣(불행단명사의)라
今也則亡(금야칙망)하니라
계강자가 묻기를, “제자 중에서 누가 학문을 좋아합니까?” 하니,
공자께서 대답하시기를, “ 안회라는 사람이 있어 학문을 좋아하더니 불행히 명이 짧아 죽었습니다.
지금은 이세상에 없습니다.” 라고 하셨다.
顔淵(안연)이 死사)커늘 顔路請 子之車(안로청 자지차)하여 以爲之槨(이위지곽)한대
子曰 才不才 (자왈 재부재)에 亦各言其子也(역각언 기자야)니
鯉也死(리야사)커늘 有棺而無槨(유관이무곽)하니
吾不徒行(오불도행)하여 以爲之槨(이위지곽)은
以吾從大夫之後(이오종대부지후)라 不可徒行也(불가도행야)니라
안연이 죽으니 안연의 아버지인 안로가 스승의 수레를 팔아 덧널을 만들어 주실 것을 청하였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재주가 있든 재주가 없든 모두 각기 그 부모에게는 다 귀한 자식일 뿐이다.
나는 내 아들 리(鯉)가 죽었을 때 관은 만들어 주었으나 덧널은 만들어 주지 못했다.
내가 걸어 다닐 생각을 하면서 내 아들에게 외곽을 마련해 주지 못했다던 것은
나는 그래도 대부들과 같이 다니는 사람으로서 어찌 수레없이 걸어 다닐 생각을 하고 네 아들의 외곽을
만들어 주겠느냐.”라고 하셨다.
顔淵(안연)이 死(사)커늘 子曰 (자왈)
噫(희)라 天喪予(천상여)삿다 天喪予(천상여)삿다
안연이 죽으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 슬프구나.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라고 하셨다.
顔淵(안연)이 死(사)커늘 子哭之慟(자곡지통)하신대
從者曰(종자왈) 子慟矣(자통의)로소이다
曰(왈) 有慟乎(유통호)아 非夫人之爲慟(비부인지위통)이오
而誰爲(이수위)리오
안연이 죽으니 선생님께서는 그의 집으로 가서 곡을 하시었다. 그러나 곡을 하시다 못해 흐느껴 우시었다.
시종하던 사람이 말하기를 “ 우리 선생님께서 진짜 흐느껴 우신다.”
이 말을 들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말로 흐느껴 울었느냐?
내가 이 사람을 위해 흐느끼지 않는다면 누굴 위해 흐느끼리오?”라고 하셨다.
顔淵(안연)이 死(사)커늘 門人(문인)이 欲厚葬之(욕후장지)한대
子曰(자왈) 不可(불가)하니라 門人(문인)이 厚葬之(후장지)한대
子曰(자왈) 回也(회야)는 視予猶父也(시여유부야)어늘
予不得視猶子也(여부득시유자야)하니
非我也(비아야)라 夫二三子也(부이삼자야)니라
안연이 죽으니 공자의 문인들이 장례를 융성하게 치르기를 원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옳지 않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문인들이 융성하게 장례를 치르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안회는 나를 아버지와 같이 여겼는데
나는 그를 자식같이 소담하게 대우하지 못했으니,
이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 너희들의 짓이다.”라고 하셨다.
季路問事鬼神(계로문사귀신)한대
子曰 (자왈)
未能事人(자왈 미능사인)이면 焉能事鬼(언능사귀)리오
敢問死하노이다
曰(왈)
未知生(왈 미지성)이면 焉知死(언지사)리오
계로(자로)가 귀신을 섬기는 것에 관하여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직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단 말인가가?”라고 하셨다.
이에 우직한 계로(자로)가 다시 여쭈었다 “ 그럼 이번에는 감히 죽음에 대해 묻겠습니다.”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아직 삶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에 대해 알겠는가?”라고 하셨다.
閔子(민자)는 侍側(시측)에 誾誾如也(은은여야)하고 子路(자로)는 行行如也(행행여야)하고
冉有子貢(염유자공)은 侃侃如也(간간여야)어늘
子樂(자락)하시다
若由也(약유야)는 不得其死然(부득기사연)이로다
제자들이 선생님을 옆에서 모시는데 민자건은 그 모습이 은은하였고, 자로는 그 모습이 강건하였고,
염유와 자공은 그 모습이 화락하였다.
이들이 옆에 있을 때 선생님께서는 마냥 즐거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러나 강직하기만 한 자로의 모습을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 자로야!! 너는 온당한 죽음을 얻지 못할 듯하구나.”고 하셨다.
魯人(노인)이 爲長府(위장부)러니 閔子騫(민자건)이 曰(왈)
仍舊貫如之何(잉구관여지하)오 何必改作(하필개작)이리오
子曰 夫人(자왈 부인)이 不言(불언)이언정 言必有中(언필유중)이니라
노나라 사람들이 장부라는 큰 재물창고를 고쳐 짓게 되니,민자건이 이것을 보고 말하기를,
“옛날 관습대로 따라 한다고 덧날 일이 있겠는가? 꼭 새로 고쳐 지을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이 말을 듣고 말씀하시기를 “ 이 사람은 평소 말을 하지 않지만,
말을 하면 반드시 사리에 들어 맛구나.”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由之鼓瑟(유지고슬)을 奚爲於丘之門(해위어구지문)고
門人(문인)이 不敬子路(불경자로)한대
子曰(자왈)
由也(유야)는 升堂矣(승당의)오 未入於室也(미입어실야)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유(자로)가 비파를 어찌 내 집 문 안에서 연주하는고?” 하시니,
문인들이 (이 말을 듣고) 자로를 공경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해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중유는 높은 당위에 당당히 오른 사람이요, 저 깊은 내실에만 아직 발을 디밀지 못했을 뿐이다.” 라고 하셨다.
子貢(자공)이 問(문) 師與商也 孰賢(사여 상야,숙현)이니잇고
子曰(자왈) 師也(사야)는 過(과)하고 商也(상야)는 不及(불급)이니라
曰(왈)然則 師 愈與(연즉사 유여)잇가
子曰(자왈) 過猶不及(과유불급)이니라
자공이 묻기를, “사(자장)와 상(자하)은 누가 더 낫습니까?”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는 지나친 편이고, 상은 미치지 못하는 편이다.”라고 하셨다.
자공이 다시 묻기를, “그렇다면 사가 상보다 낫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라고 하셨다.
季氏 富於周公(계씨부어주공)이어늘
而求也 爲之聚斂而附益之(이구야위지취렴이부익지)한대
子曰(자왈)
非吾徒也(비오도야)로소니 小子(소자)아 鳴鼓而攻之可也(명고이공지가야)니라
노나라 계씨가 주나라 주공보다 부유했음에도,
염구(염유)가 계씨를 위해 세금을 많이 거둬들여 계씨의 재산을 더 늘려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염유는) 나의 문도가 아니니, 제자들아, 북을 쳐서 그의 잘못을 꾸짖는 것이 좋겠다.” 라고 하셨다.
柴也(시야)는愚(우)하고 參也(삼야)는魯(노)하고
賜也(사야)는辟(피)하고 由也(융야)는喭(언)이니라
시(자고)는 우직한 편이고, 삼(증삼)은 노둔한 편이며,
사(자장)는 편벽한 편이고, 유(자로)는 성질이 거친 편이었다.
子曰(자왈)
“回也(회야)는 其庶乎(기서호)오 屢空(누공)이니라
賜(사)不受命(불수명)이오 而貨殖焉(이화식언)이나 億則屢中(억칙누중)이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안회는 완벽에 가까웠지! 그러나 그는 가난하여 끼니를 자주 굶었단다.
사(자공)는 천운을 타지 않는데도 재물이 늘어났다. 그는 억측을 해도 자주 들어 맞았다.”
子張(자장)이 問(문)善人之道(선인지도)한대
子曰(자왈)
不踐迹(불천적)이나 亦不入於室(역불입어살)이니라
자장이 선인의 도에 관하여 여쭈우니,
공자께서 말씀 하시길
“ 성인의 발자취를 밟고 따라가는 각고의 노력이 없으면 또한 저 깊은 경지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라고 하셨다.
子曰(자알)
論篤是與(논독시여)면 君子者乎(군자자호)아?
色莊者乎(색장자호)아?
공자께서 말씀 하시길
“ 말하는 것이 돈독하게 보인다고 그런 사람과 더불어 하는 사람을 군자라고 해야 할까?
외면만 그럴싸하게 꾸미는 자라고 해야 할까 ? 라고 하셨다
子路 問(자로 문) 聞斯行諸(문사행제)잇가
子曰(자왈)
有父兄在(유부형재)하니 如之何其聞斯行之(여지하기문사행지)리오 .
冉有 問(염유 문) 聞斯行諸(문사행제)잇가
子曰(자왈)
聞斯行之(문사행지)니라
公西華曰(공서화왈) 由也問(유야문) 聞斯行諸(문사행제)어늘
子曰(자왈) 有父兄在(유부형재)라 하시고 求也問(구야문) 聞斯行諸(문사행제)어늘
子曰(자왈) 聞斯行之(문사행지)라 하시니
赤也(적야) 惑(혹)하야 敢問(감문)하노이다
子曰(자왈) 求也(구야)는 退故(퇴고)로 進之(진지)하고
由也(유야)는 兼人故(겸인고)로 退之(퇴지)호라
자로가 여쭈었다. “ 바른 도리를 들으면 곧바로 실행해야 합니까? “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부모형제가 살아있는데, 어떻게 바른 도리를 듣는다고 어떻게 곧바로 그것을 실행할 수 있겠느냐 !.”
염유가 여쭈었다 “ 바른 도리를 들으면 곧바로 실행해야 합니까? “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암 그렇고 말고. 바른 도리를 들으면 곧 바로 그것을 실행하여야 하느니라 ”
이 이야기를 옆에서 두번 다 들은 공서화가 말하였다. “ 유 (자로)가 ‘ 바른 도리를 들으면
곧바로 실행해야 합니까’ 라고 물었을 때 공자께서
‘ 부모형제가 살아있는데 어떻게 바른 도리를 듣는다고 그것을 비로 실행할 수 있겠느냐’ 라고 대답하시고,
구(염유)가 ‘ 바른 도리를 들으면 곧바로 실행해야 합니까’ 라고 물었을 때
공자께서 ‘ 암 그렇고 말고. 바른 도리를 들으면 곧 바로 그것을 실행하여야 하느니라’ 라고 대답하시니
적(공서화)은 당혹하여 감히 여쭙니다.
이에 공자께서는 말씀하시었다. “ 구(염유)는 평소 물러나기만 하는 성격이라 앞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요,
유(자로)는 평소 사람을 앞서 질러 나아가기만 하는 성격이라 뒤로 물러나게 한 것이니라.”
子(자) 畏於匡(외어광)하실새 顔淵(안연)이 後(후)러니
子曰(자왈) 吾以女爲死矣(오이여위사의)라 호라
曰(왈) 子(자) 在(재)어시든 回(회) 何敢死(하감사)리잇고
공자가 광 땅에서 포위되어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 곤경에 빠져있었다. 이때 안연은 뒤처져 있었다.
그가 뒤늦게 도착하자 공자는 말씀하시었다. “ 회야 난 네가 이미 죽은 줄 알았다.”
이에 안연이 말하였다. “ 선생님께서 살아 계시거늘 저 회가 어찌 감히 죽을 수 있겠나이까?”
季子然(계자연)이 問(문)
仲由冉求(중유염구)는 可謂大臣與(가위대신여)잇가
子曰(자왈) 吾以子爲異之問(오이자위이지문)이라니 曾由與求之問(증유여구지문)이로다
所謂大臣者(소위대신자)는 以道事君(이도사군)하다가
不可則止(불가직지)하나니
今由與求也(금유여구야)는 可謂具臣矣(가위구신의)니라
曰(왈)然則從之者與(연직종지자여)잇가
子曰(자왈)
弑父與君(살부여군)은 亦不從也(역불종야)리라
계씨의 집안 사람인 계자연이 여쭈웠다.
“우리 집 가신 노릇을 하고 있는 중유(자로)와 염구는 훌륭한 신하라고 이를 만하나이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나는 그대가 좀 색다른 질문을 할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겨우 유와 구에 대한 질문을 하는구나”.
이른바 훌륭한 신하라고 하는 것은 있는 동안은 도로서 임금을 섬기고,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면 곧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유와 구는 그만한 수준은 못되고 보통 신하로서 숫자를 채우고 있다고 일컬을 수 있다.
계자연이 여쭈었다. “ 그렇다면 그들은 맹종키만 하는 자들이옵니까?.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아비와 임금을 시해하는 일에는 절대 따르는 일이 없을 것이다.”
子路(자로) 使子羔(사자고)로 爲費宰(위비재)한대
子曰(자왈) 賊夫人之子(적부인지자)로다
子路曰(자로왈) 有民人焉(유민인언)하며 有社稷焉(유사직언)하니
何必讀書然後(하필독서연후)에 爲學(위학)이리잇고
子曰(자왈)
是故(시고)로 惡夫佞者(악부녕자)하노라
자로가 자고를 비읍의 재상으로 삼았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멀쩡한 남의 자식 하나 버리겠구나 !”
자로가 말씀 드렸다. “ 백성이 있고 사직이 있으면
반드시 학문을 완료한 후가 아니라, 정치를 하면서도 배울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이러기에 내가 말재주가 있는 자가 밉다고 평소에 말하는 것이다.”
子路曾晳冉有公西華(자로증석염유공서화)가 侍坐(대좌)러니
子曰(자왈)
以吾一日長乎爾(이오일일장호이)나 毋吾以也(무오이야)하라
居則曰(거직왈) 不吾知也(불오지야)라 하나니
如或知爾(여혹지이)면 則何以哉(직하이재)오
자로, 증석, 염유, 공서화가 공자를 모시고 둘러앉았더니,
이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내가 너희들보다 하루라도 더 나이를 먹었다고 나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너희들이 평소 말하기를 ‘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라고 투덜거리지만 ,
만약 여기 어떤 사람이 있어 너희들을 기용하기 위해 그 사람됨을 알아보려고 한다면 과연 무엇으로
너희들은 자신을 알리려느냐?’ .
子路(자로) 率爾而對曰(솔이이대왈)
千乘之國(천승지국)이 攝乎大國之間(섭평대국지간)하야 加之以師旅(가지이사여)오
因之以饑饉(안자이기근)이어든 由也 爲之(유야위지)면 比及三年(비급삼년)하야 可使有勇(가사유용)이오
且知方也(차지방야)케호리이다 .
夫子(부자) 哂之(신지)하시다
이에 자로가 경솔히 나서서 대답하여 말하였다.
‘ 천승의 나라가 강대국의 사이에 끼어서 곤경에 처하고,대군이 덮치는 전란을 겪어
기아에 허덕여도, 저(유)가 다스린다면 3년만에 백성들을 용맹스럽게 만들 수 있고
또 바르게 사는 도리를 알 수 있게 만들 수가 있겠나이다.’
이말을 듣고 공자께서 빙그레 웃으시었다.
求(구)아 爾(이)는 如何(여하)오,
對曰(대왈) 方六七十(방육칠십)과 如五六十(여오육십)에 求也爲之 (구야위지)면
比及三年(차급삼년)하야 可使足民(가사족민)이어니와
如其禮樂(여기예악)엔 以俟君子(이사군자)호리이다
구(염유)야, 너는 어떠한고?
구가 대답하여 가로대 사방 육칠십리 정도나 오육십리 정도되는 작은 나라를 저(구)가 다스린다면
3년의 세월 안에 백성들의 경제를 유족하게 만들 수 있겠나이다.
그 나라의 예악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저보다 나은 군자를 모셔오겠나이다.
赤(적)아 爾(이)는 如何(여하)오
對曰(대왈) 非曰能之(비왈능지)라
願學焉(원학언)하노이다
宗廟之事(종묘지사)와 如會同(여회동)에 端章甫(단장보)로
願爲小相焉(원위소상언)하노이다
‘적(공서화)아, 너는 어떠한고.’ 하니
적이 대답하여 가로대 ‘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제가 이미 능숙하다고 이르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배우기를 원 하노이다.
종묘의 제사나 제후들의 작은 모임,큰 모임에 현단복을 입고 장포관을 쓰고
정치를 도와드리는 배후의 작은 집례자가 되기를 원하노이다.’
點(점)아 爾(이)는 如何(여하)오
鼓瑟希(고슬희)러니 鏗爾(갱이) 舍瑟而作(시슬이작)하야
對曰(대왈) 異乎三子者之撰(이호삼자자지찬)호이다
子曰(자왈) 何傷乎(하상호)리오 亦各言其志也(역각언기지야)니라
曰(왈) 莫春者(막춘자)에 春服(춘복)이 旣成(기성)이든
冠者五六人(관자오육인)과 童子六七人(동자칠팔인)으로 浴乎沂(욕호기)하야
風乎舞雩(풍호무우)하야 詠而歸(영이귀)하리이다
夫子(부자) 喟然嘆曰(위연탄왈) 吾與點也(오여점야)하노라
점(증석)아, 너는 어떠한고? 하고 물으시었는데,
점은 그때까지 거문고를 여유롭게 튕기고 있었다. 공자의 말씀을 듣는 순간 ‘당’하고 마지막 선율을 튕기면서
거문고를 놓고 일어나 대답하여 말하였다.
‘ 저는 세 사람의 생각의 방향과 조금 다르오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누구에게 상처를 주랴, 각자 자기의 뜻을 말했을 뿐인데 “
증석이 말하기를 ‘ 늦은 봄에 봄 옷을 갖추어 입고,
원복 입고 갓을 쓴 성인 오,육명, 동자 예닐곱을 데리고 저 남쪽 기수에서 목욕하고,
기우제를 올리는 무우단 위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 오리이다.
공자께서 들으시고 ‘아’하고 감탄하시며 말씀하시었다. “ 나는 점(증석)과 같이 하겠노라”
三子者出(삼자자출)커늘 曾晳(증석)이 後(후)러니
曾晳(증석)이 曰(왈) 夫三子者之言(부삼자지언)이 何如(하여)하니잇고
子曰(자왈) 亦各言其志也已矣(역각언기지야이의)니라
曰(왈) 夫子 何哂由也(부자 하신유야)시니잇고
세 사람이 다 나가고 증석만 남게 되니,
증석이 여쭈었다 “ 저 세 사람의 말이 어떠 하오니이가?”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각각 자기의 포부를 말했을 뿐이니라.”
증석이 여쭈었다 “ 선생님께서는 어찌하여 유의 말을 듣고 빙그레 웃음 지으셨나이까?”
曰(왈)
爲國以禮(위국이례)어늘
其言(기언)이 不讓(불양)이라 是故(시고)로 哂之(신지)호라
唯求則非邦也與(유구즉비방야여)잇가
安見方六七十(안견방육칠십)과 如五六十(여오육십)이 而非邦也者(이비방야자)리오
唯赤則非邦也與(유적즉비방야여)잇가
宗廟會同(종묘회동)이 非諸侯而何(비제후이하)오
赤也爲之小(적야위지소)면 孰能爲之大(숙능위지대)리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예로서 다스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단지 그 말이 너무 겸손이 없어 빙그레 웃은 것이다”
증석이 또 여쭈었다. “ 구가 말한 것도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었나이까 “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사방 육칠십리, 오육십리나 되는 지역치고 나라 아닌 게 어디 있겠느냐?
당당히 나라를 다스린다고 해야지, 사방 육칠십리, 오육십리하는 것은 구차스럽다.”
증석이 또 여쭈었다. “ 적이 말한 것도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었나이까 “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종묘의 제사와 회의 등의 모임이 다 제후의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적이 배후의 작은 인물이라고 한다면 누가 능히 그 놈보다 더 큰 벼슬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