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제9.자한편

백운산촌노 2010. 2. 8. 16:54

 

 

 

(자)는 罕言利與命與仁(한언이여명여인)이러시다
공자께서는 이익과 운명과 인(仁)에 대해서는 드물게 말씀하셨다.
 
達港黨人(달항당인)이 曰(왈)
大哉(대재) 孔子(공자)여 博學而無所成名(박학이무소성명)이로다
子聞之(자 문지)하시고 謂門弟子曰(위문제자 왈)
吾何執(오하집) 執御乎(집어호)아 執射乎(집사호)
吾執御矣(오집어의)로리라
 달항 마을의 사람이 말하기를,
“위대하구나, 공자여. 그런데 두루 배웠는데도 이름을 이룬 것이 없구나.”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이 말을 듣고 문하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무엇을 잡아야 하는가? 말몰이를 잡을까, 활 쏘기를 잡을까.
 나는 말몰이를 잡아야겠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麻冕(마면)이 禮也(예야)어늘 今也純(금야순)하니 儉(검)이라
吾從衆(오종중)호리라 拜下 禮也(배하 예야)어늘
今拜乎上(금배호상)하니 泰也(태야)
雖違衆(수위중)이나 吾從下(오종하)호리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삼베로 만든 면류관이 예법이지마는 지금은 명주로 관을 만드니 검약한 것이다.
 나는 여러 사람들을 따르겠다. 대청 아래에서 절하는 것이 예법이지마는
 지금은 대청 위에서 절을 하니 교만한 것이다.
 비록 여러 사람들에 어긋나더라도 나는 대청 아래에서 절하는 것을 따르겠다.”라고 하셨다.
 

(자) 絶四(절사)러시니
毋意毋必毋固毋我(무의,무필,무고,무아)러시다
 공자께서는 네 가지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사사로운 뜻이 없었고,기필코 하려는 마음이 없었고, 고집스런 마음이 없었고, 자신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었다.
 
(자) 畏於匡(외어광)이러시니 曰(왈)
文王(문왕)이 旣沒(기몰)하시니 文不在玆乎(문부재자호)아 天之將喪斯文也(천지장상사문야)신대
後死者(후사자) 不得與於斯文也(부득여어사문야)어니와
天之未喪斯文也(천지미상사문야)시니 匡人(광인)이 其如予(기여호)에 何(하)리오
 공자께서 광(匡) 땅에서 조심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문왕이 이미 죽었으니 문물이 이 몸에 있지 않겠는가? 하늘이 장차 이 문물을 없애려 한다면
 뒤에 죽을 내가 이 문물에 참여하지 못했겠지만
 하늘이 이 문물을 버리지 않으셨으니 광 땅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하셨다.
 

大宰 問於子貢 曰(대재 문어자공 왈)
夫子(부자)는 聖者與(성자여)아 何其多能也(하기다능야)
子貢(자공)이曰(왈)
固天縱之將聖(고천종지장성)이시고 又多能也(우다능야)시니라
聞之曰(자 문지 왈)
大宰 知我乎(대재 지아호)인저 吾少也(오소야)에 賤故(천고)로 多能鄙事(다능비사)호니
君子(군자)는 多乎哉(다호재)아 不多也(불다야)니라  
牢曰(뇌왈)
子云(자운) 吾不試故(오불시고)(예)라하시니라
 태재(관직명)가 자공에게 묻기를,
“공자는 성자인가, 어찌 그리 재능이 많으신가?”라 하니
 자공이 대답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참으로 하늘이 낳은 수많은 인물 중 성인이시고 또 재능도 많으십니다.”라고 했다.
 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태재가 나를 아는구나?  나는 젊어서 빈천했으므로 비천한 일을 많이 하여 재능이 많지만,
 군자는 재능이 많은가? 많지 않은 법이다.”라고 하셨다.  
 뇌(牢 ; 공자의 제자 子開)가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관직에 쓰이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기능을 익혔다.’라고 하셨다.”고 했다. 
 
子曰(자왈)
吾有知乎哉(오유지호재)아 無知也(무지야)로라 有鄙夫問於我(유비부문어아)호대
空空如也(공공여야)라도 我叩其兩端而竭焉(아고기양댠갈언)하노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나는 아는 것이 없다. 어떤 무식한 사람이 나에게 물어보
 그가 아무리 무식하드라도 나는 묻는 내용의 양끝을 두드려서 아는 대로 다 설명해 준다.” 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鳳鳥不至(황조불지)하며 河不出圖(하불출도)하니 吾已矣夫(오이의부)인저
 선생님(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봉황새가 날아오지 않고 황하에서 그림이 나오지도 않으니, 나는 이미 끝났구나.”라고 하셨다.
 
(자) 見齊衰者(견제쇠자)와 冕衣裳者(면의상자)와 與瞽者(여고자)하시고
見之(견지)에 雖少(수소)나 必作(필작)하시며 過之必趨(과지필추)러시다
공자께서 상복을 입은 사람과 면류관의 옷차림을 한 사람과 눈먼 사람을 보시고
그들을 보실 때는 나이가 작드라도 반드시 일어나셨고, 그들을 지나갈 때는 반드시 빨리 지나가셨다.
 
顔淵(안연)이 喟然歎曰(위연탄 왈)
仰之彌高(앙지미고)하며 鑽之彌堅(찬지미견)하며
瞻之在前(첨지재전)이러니 忽焉在後(홀언재후)로다
夫子(부자) 循循然善誘人(순순연선유인)하사 博我以文(박아이문)하시고
約我以禮(약아이례)하시니라 欲罷不能(욕파불능)하여
旣競吾才(기경오재)하니 如有所立(여유소립)이 卓爾(탁이)
雖欲從之(수욕종지)나 末由也已(말유야이)로다
 안연이 한숨을 쉬며 탄식해 말하기를,
선생님의 도는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아지고 뚫을수록 더욱 단단해지며,
 다보면 앞에 있더니 문득 뒤에 있구나.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사람들을 잘 이끌어 주시는데, 학문으로써 나를 넓혀 주시고
 예절로써 나를 지키게 하셨다. 그만 두고자 해도 그리 할 수가 없어서
 나의 재주를 다 써보게 하시니 (선생님의 도가) 내 앞에 우뚝 서 있는 듯하구나.
 비록 따르고자 했지만   끝내 다 따라갈 수가 없었다.”라고 했다.
 

疾病(자 질병)이어시늘 子路使門人(자로사문인)으로 爲臣(위신)이러니
病間曰(병간왈) 久矣哉(구의재)라 由之行詐也(유지행사야)
無臣而爲有臣(무신이위유신)하니 吾誰欺(오수사)오 欺天乎(사천호)인저
且予與其死於臣之手也(차여여기사어신지수야)론 無寧死於二三子之手乎(무영사어이삼자지수호)
且予縱不得大葬(차여종부득대장)이나 予死於道路乎(여사어도로호)
공자께서 아프시거늘 자로가 자신의 제자들을 공자의 가신으로 삼아 병시중을 들게 하였는데,
병환이 조금 차도가 있자 말씀하시기를, “오래 되었구나, 자로가 속임수를 쓴 것이.
나는 가신이 없어야 하는데도 가신이 있게 했으니 내가 누구를 속인 것인가? 하늘을 속인 것이다.
또한 내가 가신들의 손에서 죽기 보다는 차라리 제자들 손에서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또한 내가 비록 거창한 장례를 치르지는 못할지라도 내가 길거리에서 죽기야 하겠는가?”라고 하셨다.
 
子貢(자공)이 曰(왈)
有美玉於斯(유미옥어사)하니 韞匵而藏諸(온독이장제)잇가
求善賈而沽諸(구선가이고제)잇가
子曰(자왈) 沽之哉沽之哉(고지재고지재)(아)는 待賈者也(득가자야)로라
 자공이 말하기를,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이것을 궤 속에 감추어 두겠습니까?
 좋은 값으로 살 사람을 찾아서 팔겠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라고 하셨다.
 
子欲居九夷(자욕거구이)러시니
或曰(혹 왈)(누)커니 如之何(여지하)잇고
子曰(자왈) 君子居之(군자거지)면 何陋之有(하누지유)리오
 공자께서 아홉 오랑캐 땅에 가서 살려고 하시니,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 곳은 풍속이 비루하니 어찌 가서 살겠습니까?”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가 거기에 살 것인데 무엇이 비루한 것이 있겠는가?”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吾自衛反魯然後(오자위반노연후) 樂正(악정)하여
雅頌(아송)이 各得其所(각득기소)하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위 나라에서 노 나라로 돌아온 후에야 음악이 바로잡혀서
 아(雅)와 송(頌)이 각각 제 자리를 잡게 되었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出則事公卿(출즉사공경)하고 入則事父兄(입즉사부형)하며
喪事(상사)를 不敢不勉(불감불면)하며 不爲酒困(불위주곤)
何有於我哉(하유어아재)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밖에 나가서는 공경을 섬기고, 집에 들어와서는 부형을 섬기며,
상사를 당해서는 힘쓰지 않을 수가 없으며, 술 때문에 곤경에 빠지지 않는 것,
이런 것들 가운데 무엇이 나에게 있겠는가?”라고 하셨다.
 
在川上曰(자 재천상왈)
逝者如斯夫(서자여사부)인저 不舍晝夜(불사주야)로다
 선생님(공자)께서 냇가에서 말씀하시기를,
“흘러가는 것은 이 냇물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고 가는구나.”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吾未見好德(오미견호덕)이 如好色者也(여호색자야)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는 것만큼 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譬如爲山(비여위산)에 未成一饋(미성일궤)하여 止(지)
吾止也(오지야)며 譬如平地(비여평지)에 雖覆一簣(수복일궤)나 進(진)도 吾往也(오왕야)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유하자면 산을 쌓을 때 한 삼태기가 모자라서 중지하는 것도
내가 중지하는 것이며, 땅을 평탄하게 할 때 비록 한 삼태기를 쏟아 부어 일을 진행시킨 것도
내가 한 것이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語之而不惰者(어지이불타자)는 其回也與(기회야여)인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리를 말해 주면 실행에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은 오직 안회일 것이다.”라고 하셨다.
 
子謂顔淵曰(자 위안연왈)
惜乎(석호)
吾見其進也(오견기진야)오 未見其止也(미견기지야)로라
공자께서 안연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 애석하구나.
나는 그가 나아가는 것을 보았을 뿐, 중지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苗而不秀者(묘이불수자) 有矣夫(유의부)
秀而不實者(수이불실자) 有矣夫(유의부)인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곡식이 싹이 났으나 이삭은 패지 못하는 것이 있고,
 이삭은 패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도 있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後生(후생)이 可畏(가외)니 焉知來者之不如今也(언지래자지불여금야)리오
四十五十而無聞焉(사십오십이무문언)이면 斯亦不足畏也已(사역부족외야이)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뒤에 난 사람이 두려워할 만하니 장래가 지금과 같지 않을 것임을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마흔 살 쉰 살이 되어도 어질다는 소문이 없다면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고 하셨다.
 
子曰(자왈)
法語之言(법어지언)은 能無從乎(능무종호)
改之爲貴(개지위귀)니라 巽與之言(손여지언)은 能無說乎(능무열호)
繹之爲貴(역지위귀)니라 說而不繹(열이불역)하며 從而不改(종이불개)
吾末如之何也已矣(오말여지하야이의)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른 길로 타이르는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니라. 유순하게 이르는 말을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근본을 찾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니라. 기뻐하면서 밝히지 않고, 따르기만 하고 고치지 않는다면
나도 이런 경우에 어찌할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主忠信(주충신)하며 毋友不如己者(무우불여기자)
過則勿憚改(과칙물탄개)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성실과 신의를 행실의 바탕으로 삼고, 의지와 기개가 자기와 같지 않은 사람은 친구로 사귀지 말아야 하며,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子曰 (자왈)
三軍(삼군)은 可奪帥也(가탈수야)어니와
匹夫(필부)는 不可奪志也(불가탈지야)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삼군(전군 중군 후군)의 군대에서 장수를 빼앗을 수는 있으나,
 한 사내에게서 그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衣敝縕袍(의폐온포)하여 與衣狐貉者(여의호맥자)
立而不恥者(입이불치자)는 其由也與(기유야여)인저
不忮不求(불기불구) 何用不臧(하용불장)이리오
子路終身誦之(자로종신송지)한대
子曰(자왈) 是道也(시도야) 何足以臧(하족이장)이리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해지고 거친 솜옷을 입고서도 여우나 담비 털로 만든 옷을 입은 사람과
나란히 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중유(子路)일 것이다.
남의 것을 시기하지도 않고 탐내지도 않는다면 무엇을 해도 착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시고,
자로가 이 말씀을 평생 동안 외우려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이런 (자신의 장점을 기뻐하는) 도리가 어떻게 (자기를)
 착하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歲寒然後(세한연후)에 知松栢之後彫也(지송백지후조야)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知者(지자)는 不惑(불혹)하고 仁者(인자)는 不憂(불우)하고 勇者(용자)는 不懼(불구)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슬기로운 사람은 사리에 의혹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可與共學(가여공학)이어도 未可與適道(미가여적도)며 可與適道(가여적도)이어도
未可與立(미가여립)이며 可與立(가여입)이어도
未可與權(미가여권)이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함께 배울 수는 있어도 함께 바른 도리에 나아갈 수는 없으며, 함께 바른 도리에 나아가더라도
 함께 자립할 수는 없으며,  함께 자립하더라도,
 함께 사물의 경중을 헤아려 시의적절하게 처리할 수는 없다.” 라고 하셨다.
 
唐棣之華(당췌지화)여 偏其反而(편기반이)로다 豈不爾思(기불이사)리오마는
室是遠而(실시원이)니라
子曰(자왈)
未之思也(미지사야)언정 夫何遠之有(부하원지유)리오
 ‘아가위나무의 꽃이여,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구나. 어찌 그대를 생각하지 으리오마는
  집이 멀리 있기 때문이다.’
  이 시를 읽으시고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정이나 도리를 생각하지 않고 있을 뿐이지 생각하고 있다면 어찌 집이 멀리 있다고 하겠는가?”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