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제3 팔일편

백운산촌노 2010. 2. 3. 12:42

 

 

 

孔子 謂季氏(공자 위계씨)하시되
八佾舞於庭(팔일무어정)하니 是可忍也(시가인야)
孰不可忍也(숙불가인야)리오
공자께서 계씨(노나라 권력자)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 그가 팔일무(천자의 무악)를 뜰에서 추게 하니, 이런 짓한다면
  무슨 인들 차마 하지 못하겠는가?”라고 하셨다.
 
三家者以雍徹(삼가자이옹철)이러니
子曰(자왈)
相維辟公(상유피공) 天子穆穆(천자목목)을 奚取於三家之堂(해취어삼가지당)인
세 집안(노나라 세력가인 맹손, 숙손, 계손)에서 (제사를 마치고) <시경>의 ‘옹’장을 노래하면서 상을 치우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제후들이 제사를 도와서 진행시키니 천자는 엄숙한 얼굴로 보고 있다.’라는 의식을
 어찌 세 집안(맹손,숙손,계손)에서 가져다 쓸 수가 있는가?”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人而不仁(인이불인)이면 如禮何(여례하)
人而不仁(인이불인)이면 如樂何(여악하)리오
선생님(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면서 인자하지 않다면 예의를 어디에 쓸 것이며,
 사람이면서 인자하지 않다면 음악은 어디에 쓸 것인가?”라고 하셨다.
 
林放(임방)이 問禮之本(문예지본)한대
子曰(자왈)
大哉(대재)라 問(문)이여
禮(예)는 與其奢也(여기사야)론 寧儉(영검)이요
喪(상)은 與其易也(여기이야)론 寧戚(영척)이니라 
임방이 예의의 근본에 대해서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훌륭하구나. 그 물음이여.
 예의는 사치한 것보다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고
 상례는 그 형식을 잘 차리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하는 것이 낫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夷狄之有君(이적지유군)이 不如諸夏之亡也(불여제하지망야)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랑캐 나라에  임금이 있어 질서가 잡힌 것이, 중국에 임금이 없어 혼란한 상태보다는 낫다.”라고 하셨다.
 
季氏(계씨) 旅於泰山(여어태산)이러니
子(자) 謂冉有曰(위염유왈)
女弗能救與(여불능구여)
對曰(대왈) 不能(불능)이니이다
子曰(자왈)
嗚呼(오호)라 曾謂泰山(증위태산)이 不如林放乎(불여임방호)
계씨가 태산에 여제(산에 지내는 제사)를 지냈더니
공자께서 염유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것을 행하지 못하도록 막지 못했느냐.”라고 하셨다.
  염유가 대답하기를, “제 힘으로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아, 어찌 태산의 신령이 (예의의 근본을 질문한) 임방만도 못하다고 일컫겠는가.”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君子無所爭(군자무소쟁)이나 必也射乎(필야사호)인저
揖讓而升(읍양이승)하고
下而飮(하이음)하나니 其爭也(기쟁야)는 君子(군자)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남과 경쟁하는 이 없으나 활을 쏘는 일에서는 반드시 경쟁한다.
 활을 쏘는 상대에게 읍하고 양보하면서 활 쏘는 곳에 올라가고,
 활을 쏜 뒤에는 내려와서 진 사람은 벌주를 마시게 되니 그런 경쟁을 하는 것이 군자이니라.”라고 하셨다. 
 
子夏問曰(자하문왈)
巧笑倩兮(교소천혜)며 美目盼兮(미목반혜)
素以爲絢兮(소이위현혜)라하니 何謂也(하위야)니잇고
子曰(자왈)
繪事後素(회사후소)니라
曰(왈)
禮後乎(예후호)인저
子曰(자왈)
起予者(기여자)는 商也(상야)로다
始可與言詩已矣(시가여언시이의)로다
자하가 묻기를,
“<시경>에 ‘곱게 웃으니 보조개가 예쁘고,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반짝이네.
   흰 비단에 채색을 하였구나.’라 한 것은 무엇을 일컬은 것입니까?”라고 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림을 그리는 것은 흰 바탕이 있은 뒤에 하는 것이니라.”고 하셨다.
자하가 말하기를,
“忠信의 바탕을 갖추는 것이 먼저이고 형식적인 예는 그 뒤라는 말씀이군요.”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일깨운 사람은 상(자하)이로구나.
 비로소 함께 시를 말할 만하구나.“ 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夏禮(하예)를 吾能言之(오능언지)나 杞不足徵也(기부족징야)
殷禮(은예)를 吾能言之(오능언지)나 宋不足徵也(송부족징야)니
文獻(문헌)이 不足故也(부족고지)
足則吾能徵之矣(족칙오능징지의)리라
선생님(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라의 예법을 내가 능히 말할 수 있지만, 기나라(하나라의 후손)에서 증거를 댈 수 있는 것이 없으며,
 은나라의 예법을 내가 능히 말할 수 있지만,송나라(은나라의 후손)에서 증거를 댈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이것은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헌이 넉넉하다면 내가 능히 (하나라와 은나라의 예법에 대한) 증거를 댈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自旣灌而往者(체자기관이왕자)
吾不欲觀之矣(오불욕관지의)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체제(천자의 조상 제사)는 강신주를 땅에 부어 제사를 지냈는데,
 지금 이후에는 나는 그것을 보고 싶지 않다.”라고 하셨다.
 
或(혹)이 問禘之說(문체지설)한대
子曰(자왈)
不知也(부지야)로라
知其說者之於天下也(지기설자지어천하야)에 其如示諸斯乎인저 하시고
指其掌(지기장)하시다
어떤 사람이 체제(천자의 조상 제사)에 대한 내용을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그 내용을 알지 못한다.
 체제에 대한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천하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이것을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라고 하시고,
 자신의 손바닥을 가리키셨다.
 
祭如在(제여재)하시며
祭神如神在(제신여신재)러시다
子曰(자왈)
吾不與祭(오불여제)
如不祭(여부제)니라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실 적에는 선조가 계신 듯이 하셨으며,
`다른 신에게 제사를 지낼 적에도 신이 계신 듯이 하셨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일이 있어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남을 시켜 제사를 지내면,
 마치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은 기분이 된다.”라고 하셨다. 
 
王孫賈問曰(왕손가문왈)
與其媚於奧(여기미어오)론 寧媚於竈(영미어조)라 하니
何謂也(하위야)잇고 
子曰 (자왈)
不然(불연)하다 獲罪於天(획죄어천)이면 無所禱也(무소기야)니라
 왕손가가 공자에게 묻기를,
“집 안방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 잘 보이기보다는 차라리 부엌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 잘 보이는 것이 낫다고 하니
 무엇을 일컬은 것입니까?”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지 않다. 하늘에 죄를 얻게 되면 (용서를) 빌 곳이 없는 법이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周監於二代(주감어이대)하니
郁郁乎文哉(욱욱호문재)라 吾從周(오종주)하리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주나라(의 제도)는 하나라와 은나라(의 제도)를 거울로 삼았으니
 융성하게 문물이 구비되었다. (그래서) 나는 주나라(의 문물)를 따르겠다.”라고 하셨다.
 
子入大廟(자입대묘)하사 每事(매사)를 問(문)하신대
或(혹)이 曰(왈)
孰謂鄹人之子(숙위추인지자)를 知禮乎(지예호)
入大廟(입대묘)하야 每事(매사)를 問(문)이온녀
子聞之(자문지)하시고 曰(왈) 是禮也(시예야)니라
공자께서 태묘에 들어가서 제사를 지낼 때, 매사를 제사를 맡은 사람에게 물으니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누가 추 땅 사람의 아들(공자)에게 예절을 안다고 하는가.
 태묘에 들어와서 매사를 묻는구나.”하니,
공자께서 이 말을 듣고 “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예절이니라.”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射不主皮(사불지피)
爲力不同科(위력부동과)하니 古之道也(고지도야)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활을 쏘는 데 과녁의 가죽을 맞추는 것이 목적이지 뚫은 깊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은
 활을 쏘는 사람의 힘이 같은 등급이 아니기 때문이니. 이것이 예로부터 활을 쏘는 도이었다.”라고 하셨다.
 
子貢(자공)이 欲去告朔之餼羊(욕거고삭지희양)한대
子曰(자왈)
賜也(사야)아 爾愛其羊(이애기양)가 我愛其禮(아애기예)하노라
자공이 초하룻날 사당에 고하는 제사에 쓰는 희생양을 없애려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자공)야 너는 그 양을 아까워하느냐. 나는 그 예의를 아까워한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事君盡禮(사군진예)를 人(인)이 以爲諂也(이위첨야)라 하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임금을 섬기는 일에 예의를 다하는 것을 사람들내가 임금에게 아첨한다고 말하는구나.”라고 하셨다.
 
定公(정공)이 問(문)하길  
君事臣(군사신)하며 臣事君(신사군)을 如之何(여지하)잇고
孔子對曰(공자대왈)
君使臣以禮(군사신이례)하며 臣事君以忠(신사군이충)이니다
정공이 묻기를,
“ 임금이 신하를 부리며,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일을 어찌해야 합니까?”하니, 
공자께서 대답하시기를,
“임금은 신하를 예의로써 부리며, 신하는 임금을 충성으로써 섬기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關雎(관저)는 樂而不淫(낙이불음)하고 哀而不傷(애이불상)이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시경> 관저편은 즐거우면서도 정도에 벗어나지 아니하고, 슬프면서도 화기를 상하지 아니했다.”라고 하셨다.
 
哀公(애공)이 問社於宰我(문사어재아)하신대
宰我對曰(재아대왈)
夏后氏(하후씨)는 以松(이송)이오 殷人(은인)은 以栢(이백)이오
周人(주인)은 以栗(이율)이니
曰(왈) 使民戰栗(사민전율)이니이다
子聞之(자문지)하시고 曰(왈)
成事(성사)라 不說(불설)하며
遂事(수사)라 不諫(불간)하며 旣往(기왕)이라 不咎(불구)로다
애공이 사(토지 신을 제사지내는 곳)에 대하여 재아에게 물으니
재아가 대답하기를,
“ 하나라에서는 (사에) 소나무를, 은나라에서는 잣나무를,
  주나라에서는 밤나무사목으로 삼았습니다.
  주나라가 밤나무를 사목으로 한 이유는 백성들로 하여금 전율하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공자께서 그 말을 듣고 말씀하시기를,
이미 이루어진 일이라 말할 필요가 없으며,
  끝난 일이라 바로잡을 필요도 없으며, 이미 지나간 일이라 책망할 필요도 없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管仲之器(관중지기)는 小哉(소재)
或(혹)이 曰(왈) 管仲(관중)은 儉乎(검호)잇가
曰(왈)
管氏(관씨)는 有三歸(유삼귀)하며
官事(관사)를 不攝(불섭)하니 焉得儉(언득검)이리오
然則管仲(연즉관중)은 知禮乎(지예호)잇가
曰(왈)
邦君(방군)이라야 樹塞門(수색문)이어늘
管氏亦樹塞門(관씨역수색문)하며
邦君(방군)이라야 爲兩君之好(위양군지호)에 有反坫(유반점)이어늘
管氏亦有反坫(관중역유반점)하니
管氏而知禮(관씨이지예)면 孰不知禮(숙불지례)리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관중의 그릇은 작은 편이다.”라고 하셨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관중은 (제후가 가졌던) 삼귀라는 누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관청의 직무를 겸임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했겠는가.”라고 하셨다.
어떤 사람이 또 말하기를 “그러면 관중은 예의를 알았습니까?”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나라의 임금이라야 병풍을 세워 문을 가리거늘
  관중 또한 병풍을 세워 문을 가렸으며,
  나라의 임금이라야 두 나라의 임금이 만나서  우호를 다지는 자리에 반점(술잔을 주고받는 흙으로 만든 대)을
  둘 수가 있거늘
  관중 또한 반점을 두었으니 관중이 예의를 안다면 누구인들 예의를 알지 못하리오.”라고 하셨다.
 
子語魯大師樂曰(자어노대사악왈)
樂(악)은 其可知也(기가지야)니 始作(시작)에 翕如也(흡여야)하야
從之(종지)에 純如也(순여야)하며 皦如也(교여야)하며
繹如也(역여야)하야 以成(이성)이니라
공자께서 노 나라 태사(악관)에게 음악에 대해 말씀하셨다.
“ 음악은 알 수 있으니, 처음 연주를 시작할 때에는 여러 音이 합해지고, 울려 퍼질 때에는
  서로 和音을 이루면서도 각각의 음이 분명히 드러나고,
  곡조가 계속 순조롭게 이어지면서 한 곡이 완성되는 것이다.”
 
儀封人(의봉인)이 請見曰(청견왈)
君子之至於斯也(군자지지어사야)에 吾未嘗不得見也(오미상불득견야)로다
從者見之(종자견지)한대
出曰(출왈)
二三子(이삼자)는 何患於喪乎(하환어상호)리오
天下之無道也久矣(천하지무도야구의)니
天將以夫子(천장이부자)爲木鐸(위목탁)이시니라
의 땅의 봉인(관원)이 공자를 뵙기를 청하면서 말하기를
“ 관직에 계신 훌륭한 분이 이곳에 오신 경우에는 제가 일찍이 뵙지 못한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하니,
수행하는 사람이 공자를 뵙도록 하였다.
봉인이 공자를 뵙고 나와서 말하기를,
“ 여러분은 공자께서 관직이 없이 지내고 있는 것을 어찌 근심하십니까?
  천하가 어지러워진 지가 오래 되었으니
  하늘이 장차 부자(공자)를 세상 사람을 깨우치는 목탁으로 삼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子謂韶(자위소)하시되
盡美矣(진미의)요 又盡善也(우진선야)라 하시고
謂武(위무)하사대
盡美矣(진미의)오 未盡善也(미진선야)라 하시다
공자께서 소(순임금의 음악)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라고 하셨으며,
  무(무왕의 음악)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지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는 않다.”라고 하셨다.
 
子曰(자왈)
居上不寬(거상불간)하며 爲禮不敬(위례불경)하며
臨喪不哀(임상불애)
吾何以觀之哉(오하이관지재)리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못하고, 예의를 행하면서 공경할 줄 모르며,
 상사를 치를 적에 슬퍼할 줄 모른다면,
 내가 무엇으로써 그 사람의 잘하고 잘못하는 것을 보고 알겠는가.”라고 하셨다.